독서: 길 잃은 당신의 인생 지도를 밝히는 법 (나민애 교수 세바시 강연)

1.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독서의 시작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민애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간절히 찾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밥을 먹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어머니의 딸'로 자신을 인지하게 하셨고, 시 쓰기에 몰두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시를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인지하게 하셨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부터 '공부하는 학생'으로 규정되었죠.

하지만 사회인이 되어서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직장에서는 내가 없어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대체 가능한 부품'이라는 사실에 존재론적 고민이 깊어졌다고 합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대체 가능한 인력'이라고 말하며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지워나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사전에서 인간의 정의는 찾을 수 있지만 '나민애'라는 한 사람의 정의는 어디에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민애 교수님은 "나 자신의 정의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2. 책 속 '내 마음에 꼭 맞는 구절'이 만드는 인생 지도

독서는 마치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이유 없이 눈길을 끈 책이 있거나, 어떤 한 구절이 우연히 내 마음에 '툭' 걸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나민애 교수님은 이러한 책 속 "내 마음에 꼭 맞는 이" 같은 구절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내 안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길을 따라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힘들었던가"라는 구절을 통해, 위대한 작가조차 자신처럼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어려웠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헤세의 다른 책에서 만난 "네 안에는 수많은 네가 있어" 라는 구절과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처럼, 자신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나'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마음이 편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민애 교수님은 이러한 책 속의 작은 문장들을 모으는 과정을 "자신만의 인생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비유합니다. 마치 게임에서 맵을 밝히고 퀘스트를 수행하듯, 책 한 권을 읽으며 그 주변 길을 밝히고 한 걸음 나아가고, 또 다른 책을 읽으며 다음 길을 밝히는 것처럼, 인생의 지도는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책은 그 과정을 돕는 작은 지도이자 도구인 셈입니다.

3. 활자가 아닌 '내 목소리'로 듣는 독서의 힘

나민애 교수님은 독서가 영상 매체와 다른 특별한 힘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영상물은 제작자의 목소리로 들리는 반면, 책을 읽을 때는 글자가 내 머릿속에서 '내 목소리'로 재생됩니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속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어"라는 구절을 읽을 때, 비록 작가가 쓴 글이지만 내 목소리로 들리면서 마치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와닿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책 속 이야기가 '내 말'이 될 때, 그 내용은 자연스럽게 나의 일부로 스며들기가 쉬워집니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 나의 내면과 대화하고 나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깊이 있는 경험인 것입니다.

4. 어렵게 생각 마세요! 즐겁고 편안한 '가성비' 독서법

혹시 독서를 어렵거나 부담스럽게 느끼시나요? 나민애 교수님은 독서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렵거나 훌륭한 책만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아들의 '독서 감시' 에피소드처럼, 억지로 하려 하면 책이 싫어질 수도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죠.

독서는 스스로 좋아하고 즐길 때 비로소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브런치에서 친구를 만나듯,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부 전화를 하듯 편안하게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나민애 교수님은 독서를 "가성비가 굉장히 좋은 문화 소비재"라고 표현합니다. 여행을 가지 못해도 책 세 권을 읽는 36시간의 '혼자만의 여행'을 통해 세 곳을 여행한 것 같은 재충전과 기쁨을 얻었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들려주며, 적은 비용으로도 풍부한 경험과 만남을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독서는 즐거운 취미이자, 나를 가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인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나민애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독서가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 행위를 넘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찾고, 책 속 구절들을 길잡이 삼아 나만의 인생 지도를 한 걸음씩 만들어가는 여정 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오늘 한번 마음에 '툭' 걸리는 책 한 권을 집어들어 보세요. 그 책 속 한 구절이 당신의 인생 지도를 밝히는 새로운 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 즐겁고 편안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독서 여행을 떠나보시길 응원합니다.

시골돼지🐽